San Diego에서

Unspoken Story 2008/10/30 16:21

최근 몇달 동안 블로그에 지난 방학 동안의 한국 방문기에 대한 사진이랑 글 올렸다.
오늘 이 페이지를 한국 방문기는 끝난다.
아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국으로 돌아올 때는 유마 누나집에 들르기로 했다.
캘리포니아 LA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직접 운전해서 6시간을 달려가기에 너무 멀어 규만이 형 집에서 하루를 잤다.

한국 타운에서 처리할 일도 있었고, 우선 샌디 에이고에 잠깐 들린 뒤 밤 10시 쯤에 유마로 향했다.
더운 여름날 사막을 달리기는 무리라 생각해서 밤 늦게 출발 했는데 가는길에 몇번이나 졸았다.
그래서 자정이 훨씬 지나서 반가운 누나집에 들어섰다.

누나는 그대로 이지만 이제 조카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시간이 너무 없어서 누나 집에도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누나는 오랫만에 밥도 한번
제대로 못해 주었다고 서운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나집에서 일찍 나섰다. 3시간을 꼬박 달려 샌디 에이고에 도착하니 10시였다.
우선 매형 부모님집에 찾아갔지만 집에 계시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요시를 일찍 만나기로 했다.
다행이 나는 시내에 있었고 요시는 시티 칼리지에 있었다.

미국에서 사귄 오랜 친구 중 한명 요시 이번에 다시 미국에 왔다. 자신의 꿈을 약간 접어두고,
회계학을 공부하고 우선 직장을 잡을거라 했다. 씨티 칼리지에서 우리 은사님 빌 교수님도 뵈었다.
1년이 훨씬 지난 뒤에 만나서 할 얘기가 많았다.

예전에 같이 살던 아파트 근처에 가서 브리또 점심을 먹고 커피를 싸서 발보아 공원으로 갔다.
샌디 에이고에 와서 여기를 오지 않는 것은 샌디 에이고의 방문에 어긋난다. 발보아 공원은 항상 같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만날 사람이 더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샌디 에이고에서 만난 더 중요한 사람 미노루 할아버지 작년에 같이 대륙횡단을 했다.
University ave.를 거닐다가 할아버지가 계신 아파트 근처에서 전화를 했는데 할아버지는 거기에 계시지 않았다.
사진은 대륙횡단을 하기전에 할아버지 친구분을 만났을 때다.

글자 점을 치시는 할머니인데 엄청나게 정이 많으신 분이다. 그리고 그 점도 정확하다.
점을 보려 오는 사람에게 항상 점심을 주신다.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가져라는 뜻에서.
나도 물론 잘 차려진 한상을 받았다. 비위가 약한 나는 아무거나 선뜻 먹지를 못하는데

할머니께서 하신 한 마디에 나는 무조건 먹었다.
"학생들은 언제나 돈이 없고 배가 고프다. 나는 그런 마음 잘안다. 무조건 많이 먹어라.
이런데 오면 주저말고 먹어라. 너는 학생이고 배가 고플것이다"

어떤 한마디보다 무서웠고 힘이 있었다. 그리고 집을 나설 때 또 과일을 잔뜩 사 주셨다.
이유인 즉 학생들은 돈을 아낀다고 과일을 잘 사먹지 않는다고.
(나는 그 당시 잘 먹고 다녔고 과일은 항상 달고 살았다) 이런 할머니의 정이 그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스톤에 있다가 샌디 에이고에 가게 되면 꼭 만나야 사람들이 또 있다.
나의 은사님들 나에게 노인학의 길을 열어 주신분들이다. 항상 그렇듯 연락을 하지 않고 그냥 오피스 찾아간다.
그곳은 내가 내 집 드나들듯 한곳이었니까. 개강을 한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었다.

마리오 교수님이랑 와킨 교수님을 이번에 뵙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준비해온 조그마한 선물을 메일 박스에 두고 왔다.
다음 샌디 에이고 방문에는 꼭 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만날 사람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이럴때는 여름날의 긴해도 너무 짧다. 저녁은 진선이 형이랑 월남국수를 먹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수업이 끝날 재혁이 형을 만나기로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선이 형이랑 저녁을 먹고 재혁이 형을 기다려야 했다.
뭘할까 하다가 차를 마시러 역시 자주 가던 케익집에 갔다. 수 많은 샌디 에이고의 작업 장소 중에 한곳이다.
아직은 작업 들어 갈 상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해 그 여느때처럼 남자랑 갔다.

예전 아파트랑도 가깝고 내가 좋아하는 발보아 공원이랑도 가까운 곳이라 자주 찾았다.
분위기가 좋고 달콤한 케익이 맛있고 향긋한 차가 좋다. 또 가고 싶다.
차 마시는 동안 재혁이 형이 왔다. 술 한잔이 그리웠다. 그 다음 또 작업 장소로 좋은 와인바에 갔다.

월요일 밤이라 다행이 사람들이 적어서 쉽게 자리를 잡았다. 다른날 같으면 그 시간에 자리 잡을 수 없다.
한잔 더하고 싶었지만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미안하게도 어른들이 계시는 댁에 너무 늦게 들어갔다.
다음날에도 아침 같이 먹고 금방 나와야 했다. 아직 할일이랑 만날 사람이 더 있었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날 아침에 DMV에 들렀다가 아침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샌디 에이고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곳으로 갔다.
주말 브런치로 유명해서 그런지 항상 줄이 긴곳이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아침을 먹을 수 있어 좋다.
부드러운 카페치노에 둥근 달 같은 펜 케익에 달콤한 메이플 시럽 더할 수 없이 좋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침을 먹고 머리를 자르러 갔다. 한국에서 너무 바빠 못하고 왔어 섭섭했지만,
샌디에이고에 항상 낸시 아줌마가 계시기에 걱정이 없다. 처음에 샌디 에이고에서 머리 자르는 것이 곤혹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값도 비쌌다. 학교를 다니며 가장 값싸게 자르는 곳을 찾다가

세번째로 낸시 아줌마를 알았다. 캄보디아에서 오셔서 나 만큼이나 강한 악센트가 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내가 사진을 가져가 똑같이 깍아 달라하며 같이 큰 소리로 웃었다.
사진 속의 내가 더 잘생겼다고 하셨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6년째 그 집을 다녔다.

삭발 할때는 가지 않았지만 그외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큰 돈은 아니지만 1불 팁을 항상 거절하셨다.
언제나 5불에 1불을 더 드렸다. 보스톤에 이사 온뒤에도 두번이나 찾아 갔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갈때 마다 아주머니는 내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하신다.

하기야 처음에 사진들고 설명을 했으니까. 이번에 갔더니 아주머니께서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러 먼길 찾아온 것만 너무 고맙다고 하지만 오늘 공짜로 하면 다음에 미안해서 오진 못할 것 같다니까
나 못보면 안된다고 그냥 5불만 달라고 하셨다. 그냥 6불 드렸다. 나의 마음도 변하지 않을거니까.

그리고 미장원 근차 자동차 수리점에 갔다. 베트남에 온 이 아주머니 자동차에 관한 박사이시다.
너무 너무 잘해주시고 거짓말 하시는 경우가 없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주시고 저렴하게 가격을 매기신다. 3년 동안  수없이 많이 찾아가며 너무 친해졌다.

농담으로 내차를 그만 보는게 소원이라신다. 내가 자꾸 자꾸 돈을 쓰게 되니까.
그후 난 주변에 모든 사람들을 이집에 소개 해주었다. 갈때 그냥 녹색 센트라 제이 소개로 왔다하면 다 안다.
한국 시골에 친구 오빠가 베트남 사람이랑 결혼했다 하니까 자기도 그런 뉴스 많이 들었다고

나중에 괜찮으면 자기 사촌 소개해 시켜 주신다고 하셨다.
지금은 차가 없다 하니까 나중에 차 사서 문제 생기면 전화하라 하셨다.
그러나 보스톤에서 차를 사기는 힘들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스톤 비행기를 LA에서 타는데  규만이 형 집에서 하룻밤 더 신세 지기로 했기에
샌디 에이고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아직도 만날 사람 추억의 장소를 찾아 가기에 너무 많이 남았다.
샌디 에이고에서 보낼 마지막 시간은 창면이랑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학교 다닐때는 그렇게 친해지지 않았는데 같이 일하다가 급속히 친해졌다.
그 후에 골프도 많이 배우고 그랬다. 다행이 형 점심 시간에 같이 밥 먹기로 했다.
보스톤에 와서 형인데 전화 잘 못했는데 전화 한번 해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규만이 형집 은하 형수님 집에 도착했다.
보스톤 이사가면서 자주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나보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보다 내가 더 많이 만났다.
언제나 만나도 너무 편하다. 이날 저녁에 맥주 같이 한잔 했다. 정말 오랫만에 같이 맥주잔 들었는데,

내가 너무 피곤해서 너무 너무 미안해 죽겠다. 더 많은 이야기 나누었어야 되는데 말이다.
형수님께서 나중에 건강하고 예쁜 애기 낳았으면 좋겠다.
보스톤으로 돌아 오기전에 샌디에이고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한다고 너무 바빴다.

정말 시간이 없어 속상했다.
사람들도 더 만나야 했고 추억이 살아 숨쉬는 곳들도 다  가보지 못해서 아쉽다.
그리고 여름 방학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2008/10/30 16:21 2008/10/30 16:21

trackback :: http://koreangerontology.com/blog/trackback/233

comment

  1. Chester 2009/02/07 07:19  address  modify  write

    마지막 사진 첨보는데, 어디서 찍은건지 모르겠네??

    • Gerontology 2009/02/07 19:02  address  midify

      이 사진 아마 결혼하고 신혼 여행으로 하와이 들렸다가 샌디 에이고에 와서 재혁이 형이랑 진선이 형이랑 친구네에서 밥 먹고 영민이 형 만나러 sdsu 앞 living room에서 커피 차 마시며 서로 폰 자랑하며 찍었어요...영민이 형 카메라도 구경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