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군

Life in Boston 2007/08/11 10:21

 내 생애 제일 높히 오른 순간은 그날밤에 던진 무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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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동문으로 옐로우 스톤을 빠져 나왔다. 저녁 7시, 비구름이 지나간 뒤 세상은 대낮처럼 밝았다.
여름날의 해는 아직 길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항상 오전 8시에서 오후8시까지의 일정을 잡았다.
옐로우 스톤 산자락을 끼고 여행객들을 위한 서비스업이 많은 와이오밍주의 코디라는 도시에 이르렀다.

인구가 만명이 넘는 소도시인데 조그마한 타운에는 식당이며 선물 가게 그리고 많은 모텔들이 즐비했다.
주왕산을 바라보고 있는 청송 읍내를 거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도시의 지역 경제를 죽인다고 말이 많던 월마트도 당당하게 서 있었다.

월마트 옆에는 로데오 경기가 한창이었다.
시간도 많은데 잠시 들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밤 특별 경기도 있다는데,
하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가난한 여행자의 슬픔이다.

잠깐 지나간 생각, 이런 곳은 관광지라 숙박비가 많이 비쌀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모텔이 많아 경쟁이 심해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짧은 시간에 미처 하지 못했다.
그냥 처음 생각을 가지고 할아버지께 의견을 물었다.

아직 밝으니 1시간 정도 걸리는 다음 도시까지 가자고 했다. 지도상에 보이는 점은 도시 같았다.
시간이 많았기에 할아버지도 반대가 없었다.
초원의 저 끝에서 다가올 도시를 바라며 길을 계속 나섰다.

위도상으로 많이 북쪽, 9시가 되어도 좀처럼 어둡지가 않았다. 여름날이라 더욱 밝았다.
샌디 에이고와 달리 아직 익숙지 않아 이상한 기분이었다. 캄캄해야 되는데
와이오밍 주 전체가 정말 시골 같다. 오직 초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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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직선으로 쭈욱 뻗은 길은 오직 초원만 가로 질렀다.
넓디 넓은 초원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초원을 가르는 길에서 그냥 누워있었다.
언제 다시 한번 이런데서 대자로 누워볼까. 한 5분이 지나도 지나가는 차가 없었다. 조용함 그 자체였다.

8시가 넘어서 Greybull에 도착했다. 인구가 2000명 더 작은 도시이다.
마냥 도시이기를 바라며 달렸거만 나온 동네는 주왕산 상의리 수준이었다. 한적한 시골 동네.
모텔이 조금 있었지만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쌌다. 억울해서 약간 밑에 다른 도시에 갔다.

이런 힘이 빠진다. 아예 모텔도 없는 완전 시골 마을이다. 9시가 넘었다.
뒤로 돌아갈 것이냐. 앞으로 산을 넘어 갈 것이냐. 동을 향해서 달리는 우리들은 서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차는 기름으로 채워지고 나는 박카스로 에너지를 채우고 산을 넘기 시작했다.

산을 넘는데 어느새 비구름이 다가왔다. 또 비가 오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2차선 좁은 도로 밖은 천 길 낭떠러지이다. 산은 꼭 서부 영화 배경이란 비슷했다.어린 시절 영화 속의
그 분위기 그 자체였다. 금방이라도 말을 타고 총을 지난 사나이가 나타날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

말타고 넘나드는 산, 버섯같이 생긴 산 사이로 난 길.
아침 6시부터 운전을 해서 너무너무 피곤했는데, 도저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길에 보이는 차량은 오직 우리가 탄 차뿐이었다. 10시가 훨씬 넘어 정상에 다다렀다.

해발 9033피트, 약 2700미터가 넘는다. 내 생애 제일 높은 곳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산길은 내려가는게 더 힘이 든다고 했던가. 목장 사이를 가르는 길인데 느닷없이 사슴이 지나다니고
소들이 자리를 옮기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에 비는 그치지 않았다.

보이는 것 여기 저기 한 무더기의 소 무리 불 빛은 온데 간데 없었다.
흐린 날씨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길은 계속 내려 가고 있었다. 정말 큰 실수였다.
한참을 더 달리고 달려 산 아래 마을의 모텔을 보았다. 가격은 산 넘어 저쪽 동네와 비슷했다.

하지만, 주저 없이 방을 잡았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피로만 쌓은 채 남는 것은 없었다. 피곤해서 잠이 잘 올줄 알았지만 더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마음껏 늦잠을 잤다. 할아버지도 많이 피곤하셨는지 평소보다 더 주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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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난 한듯 여행으로 늦은 아침을 맞았다. 늦잠이 도움이 되었을까.
몸은 한결 가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와이오밍을 벗어나 사우스 다코타에 들어섰다.
휴게소에 들어서고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유가 넘친다.

이번 여행의 처음으로 짜릿한 순간이었다.
내 생애 제일 높은 곳에 오른 것보다 황량한 산 길이 감동이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한 감동이다.

2007/08/11 10:21 2007/08/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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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김규만 2007/08/15 00:59  address  modify  write

    좋은 경험 했네. 앞으론 그냥 순리에 따르슈~
    대자로 눕는것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닌데. ㅋㅋ

    • 노인학 2007/08/15 05:40  address  midify

      그냥 하면 됩니다...
      샌디에서 그럴데가 있냐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