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Unspoken Story 2008/10/22 11:06

며칠 동안 떠들썩 했던 집안에 고요한 기운만 가득했다.
조용한 기분을 달래려 길을 나섰다.
저 멀리 하늘에 해 넘어 가는 소리 느릿 느릿 발걸음 맞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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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 하나에 기억 속의 저편으로 다가갔다. 서쪽 하늘 멀리 해 떨어지고 여름 날의 시원한 바람삼아
나는 변함없이 또 걸었다.나는 변했지만 길은 그대로 였고 들녁의 푸른 빛도 변하지 않았다.
나의 발길에 차였던 돌도 그렇게 그렇게 그 자리에 있으며 오늘 또 내 발걸음에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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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뚝길 밭 뚝길 어느 하나 변함이 없다.오직 바뀐 것은 같은 길을 따라 걷는 나 자신 뿐.
저 멀리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두리 둥실 나만의 사연도 함께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해는 졌다. 나는 사진을 찍지만 풍경은 머리 속에 그려지고 마음으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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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같은 자리를 지키며 움직이지 않으며 그 자리를 지킬 줄 알았는데.
어느새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이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아 사라진게 아니라 늘 그렇듯 언제나 내 마음에 있어 그거마저 잊고 살았는가 보다.

이제 보지 않고 눈을 감고 가슴 속 깊은 곳 창문을 연다.
그 안에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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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방에 오니 그 옛날 끄적 끄적 거렸던 시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나는 그렇게 오늘 걸었다.
내가 가진 모든 추억들을 보지 않고 가슴으로 느꼈다.

정지용의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랴.

2008/10/22 11:06 2008/10/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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